조금씩 해가 머무는 시간은 늘고 있었지만 여전히 겨울은 길고 혹독했다. 성큼 다가온 차가운 기온에 뉴트가 길게 숨을 흩뜨리며 걸음을 옮겼다. 며칠내로 눈이 올 테다. 겨울마다 눈은 색이 밝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잿빛에 가까운 회색이었다. 뉴트는 화려한 금발을 감추듯 후드를 푹 눌러쓰고는 가게의 문을 열었다. “여, 뉴트!” “벌써들 취했냐?” 이미 빈 잔이...
눈을 떴을 때 뉴트가 본 것은 민호의 얼굴이었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 그것은 그 단어만으로 부족할 정도로 복잡했고, 뉴트는 눈이 마주친 순간 거기 담긴 수많은 감정이 넘실거리며 제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다. 피부에 닿지 않았는데,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뉴트에게로 전이되고 있었다. 뉴트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손...
그 순간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뉴트의 눈이 잠시 맑아졌다. 뉴트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부탁이야, 토미.” 0도의 밤 01 “허억!” 뉴트가 커다란 숨을 비명처럼 토해내며 눈을 떴다. 돌아온 의식과 함께 쏟아져 내린 건 빛이었다. 형광등의 새하얀 빛이 정신없이 뉴트의 갓 뜬 동공을 찔러대듯 몰아쳤다. 뉴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눈을 다시 ...
“뉴트.” 그 목소리에 뉴트가 몸을 돌렸다. 화가 잔뜩 난 듯 위로 올라간 오른쪽 눈썹 아래, 눈꺼풀에는 기다란 상처가 생겨 있었다. 피가 쏟아진 탓에 뉴트의 오른눈은 검붉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까맣게 굳어 죽은 피가 뉴트의 기다란 속눈썹에 다락다락 걸려 있다. 뉴트는 힘겹게 시선을 그에게 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말했잖아, 널 두고 갈 수 없...
“형, 형이 필요한 건 뭐 없어?” 척이 미리 챙겨운 가방 안에서 차례대로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어 굴 안에 들어있는 토마스에게 보였다. 프라이가 이 혁명 아닌 혁명-이 말 또한 프라이가 먼저 꺼냈는데, 그는 뭔가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에 참여하는 바람에 제법 챙길 짐이 많았다. 수통과 간략한 도시락, 그리고 눈치껏 뉴트가 의무실에서 빼내온 비상약까지 하나하...
민호는 밖에서 점심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는 차를 타지 않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우중충한 회색이 깔린 하늘 위로 오늘의 온도와 강수량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저녁부터 눈이 내릴 거라는 멘트를 한 번 바라본 민호가 몇 걸음 떼다가 정수리를 쓸었다. 굳은살이 배긴 손바닥 위로 점점이 떨어진 잿빛이 녹아내리...
*스코트라 나오기 전에 썼던 글이라 설정이 무척 다릅니다 *스코트라 나오기 전에 썼던 글이라 설정이 무척 다릅니다 도시는 항상 조금 싸늘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기준도 미로에서의 생활이 전부여서, 소년들은 도시가 전해준 차가운 살갗이 원래는 정상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이곳이 춥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보냈던 시...
PEACH, CRUSH ON YOU 안다니엘 * 이찬희 w. tellingy 아, 피곤하다. 부러 소리 내서 말하진 않았지만, 찬희는 그야말로 기절 직전이었다. 새벽같이 출국하느라 어젯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고, 얼마 되지 않는 비행시간 쪽잠을 잔 게 전부였다. 그러고 바로 다시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해 짐을 내려만 놓고 미팅이며 리허설에 참석하느라 정신이 없...
브랜든 설리반은 눈앞에 펼쳐진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기 힘들었다. 눈앞에 브랜든이 부랴부랴 편의점에서 사온 티백으로 내린 찻잔은 쥔, 휠체어에 앉은 다리를 담요로 덮은 단정한 차림의 남자는 익숙하고 또 낯설었다. 그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잔뜩 모으고 뜨거운 차로 입술을 축이고 있었다. 그런 표정과 모...
‘…건 더 이상… 가치가 없어.’ 이건 꿈이다. 아니, 규현은 정정했다. 이건 버그다. ‘이름이…… 사라질…’ 어쩌면 오류, 어쩌면 에러. 다들 비슷한 이름의 실수. ‘그런가요.’ 매번 같은 대화. 그 중 하나는 무척 익숙한 목소리다. 자신의 것이었던가, 혹은 자신이 닮은 누군가였던가. ‘하지만 나는 계속…… 부를… 거예요.’ 공백의 간격이 지운 단어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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